아버지의 재판 중, 아이가 말을 이어가고 있다.아이는 12살이다.

지난 목요일 티브이에서 다큐멘터리를 봤다. 프로그램은 <Envoyé  spécial> 이다. 탐사보도·르포르타주로, 사회 문제, 국제 이슈, 사람들이 사는 이야기 등을 깊이 있게 다루는 시사 다큐멘터리이다. 르포르타주 첫 번째 에피소드는 “Le procès de mon père.”(아버지의 재판).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살해당한 사건을 직접 목격한 아이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살해했다. 당시 작은 아이는 9살이었고 그 누이는19살이었다. 아이들은 잠옷 바람으로 날카로운 비명을 듣고 부엌으로 달려가 피 웅덩이 속에 쓰러진 어머니를 발견했다. 아버지는 이후 경찰에 자수했다. 르포르타주 팀은 2023년에 아이들을 처음 만났다. 그들은 한 기관에서 여성 살해(페미니사이드) 피해자 유가족을 위한 심리치료 프로그램을 받고 있었다. 사건 3년 후 아이들은 함께 아버지의 재판에 증인으로 참석했다. 재판은 론(Rhone) 지방법원 Cour d’assises 에서 다시 열렸고, 아버지는 배우자 살해 혐의 (meurtre sur conjoint) 으로 기소되었다. 르포르타주 탐사팀은 이틀간의 재판 과정을 촬영할 수 있는 특별 허가를 받았다. 이는 프랑스에서 매우 드문 일로, 재판의 실제 분위기와 감정이 그대로 담겼다. 이 프로그램은 단순한 범죄 고발 보도가 아니다. 살아남은 아이들이 어떻게 삶을 이어가는가에 대한 깊은 인간적인 탐구라 할 수 있다. 아이의 삶과 회복에 초점을 두고 있는 이유이다. 아이들이 심리치료를 받으면서 다시 삶을 재구축해야 하는데 그것을 돕기 위한 일환이었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살해하고 아버지가 교도소에 있는 3년 동안 아이들은 이모 집에 살고 있으면서 단 한 번도 아버지를 찾지 않았다. 재판 과정에서 재판관은 아이들에게 질문을 많이 했다. 아주 조심스럽게 말이다. 뭔가를 더 알려고 했기보다는, 아이들에게 말할 수 있도록, 그들의 안에 묶여있는 기억들이 모두 나올 수 있도록 길을 여는 길잡이 역할을 하는 듯했다. 살인 사건의 당사자들 앞에서 사실상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질문할 수 있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재판관은 자신의 감정보다는 아이들의 말할 수 있음에 방점을 두고 있었다. 아이들의 기억이 강요 없이 자연스럽게 나오도록, 심리적으로 무너지지 않도록 보호하면서 말이다. 아이들이 울거나 말을 잇지 못하면 잠시 중단하기도 하면서, 부드럽고 보호적인 태도를 유지했다. 

“당시 몇 살이었어?” / “그날 어떤 일이 있었는지, 네가 기억하는 만큼만 말해도 괜찮아.” / “지금 이야기하는 것이 힘들다면 언제든 멈춰도 돼.” / “당시 상황을 네가 본 그대로 설명해 줄 수 있겠니?”

사건을 접한 아이들은 표현해야 했다. 물론 상대방을 공격하거나 모욕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에 해당하지 않음을 전제하면서 말이다.

아이들은 끔찍한 사건을 직접 목격했다. 그 사건은 아이들의 삶 내내 철석 달라붙어 떨쳐낼 수 없는 트라우마가 되었다. 아이들은 이중의 희생자이다. 내부에 웅크리고 있는 모든 억압된 것들을 표현하면서 자유로움을 얻어야 했다. 또한 잘못을 한 사람을 정면에서 마주해 저항할 수 있어야했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직접 마주했을 때 질문하고 대화로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어머니를 살해한 아버지를 그저 한 사람으로 여기면서 판사의 질문을 통해 당시의 상황에 대해 말을 이어갔다. 아버지는 아이들의 질문에 대해 판사의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당시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했다. 변명과 회피, 거짓말이 많았지만, 그렇게 대화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기대해볼 수 있다.

아이들의 이모가 증인석에 나왔다. 아이들과는 다른게 이모는 자신의 모든 감정을 실어 자신의 언니를 죽인 사람을 “괴물”로 여러 번 칭하며 울분을 토해냈다. 듣고 있던 재판관은, 저 사람이 괴물이라면 그 당시, 아니 자신의 언니가 10여 년을 폭력 속에 살았는데 그것을 보고 알고 있었으면서 왜 아무것도 하지 않았나, 한 사람으로서!, 라고 되물었다. 이 자리는 사람을 판단하는 자리가 아니다, 행위를 판단하는 자리다, 라고 못 박았다.

검사 역시 아이들에게 물었다. 그 행위 이전에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았었냐고 말이다. 아이들은 사랑했었다고 주저 없이 대답했다. 행위가 있고, 사람이 있다. 어떤 쪽을 평가하고 판단해야 할까에 대한 문제로 귀결된다.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 있는 게 아니라, 선한 행위가 있고, 악한 행위가 있다. 행위의 여부에 따라 사람을 판단하는, 그런 행위를 우리는 종종한다. 무엇이 사람으로 하여금 특정한 행위를 하도록, 그토록 떠밀었는지, 에 대해 고찰해야할 부분이 분명있다. 재판을 지켜보면서 난 내 삶을, 내가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무엇을 중요하게 여겼는지 돌이켜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