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의 세상은 우리가 사는 익숙한 곳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하며, 나아가 자기 자신을 새롭게 구축하도록 돕는다. 글작가 에밀라 샤즈랑과 그림작가 세바스티앙 무렝이 만나 마르티니에르 출판사에서 2026년 4월에 발행한 그림책 “털(Le poil)” 이 그렇다.

식사 시간, 좋아하는 음식을 먹을 생각에 마음이 들뜬다. 그런데, 불청객과 마주친다면?

 카롤은 일요일마다 좋아하는 레스토랑에 간다. 카롤에게 가장 큰 즐거움이다. 강아지 장-이브와 남편 파타푸프와 함께 말이다. 여느 일요일처럼, 레스토랑에서 미네스트론 이탈리아 수프로 식사를 시작하려는데, 웬걸, 처음 보는 이상한 물체가 둥둥 떠있다. 짧고, 검으며 살짝 웨이브가 있는… 그랬다. 공격적인 머리카락이다. 딱히 정해진 것은 없고 그저 여러 가지 야채를 섞어 만든 수프지만, 먹을 때마다 카롤은 충분한 안정감과 편안함을 길어 올릴 수 있었다. 그러나 뜻밖의 그 만남, 머리카락 한 올로 인해 카롤의 내면세계가 완전히 흔들린다.

 예기치 않은 사건, 사고를 맞닥트렸을 때, 우리는 종종 그 원인을 찾으려 한다.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난 건지에 대한 호기심이 자연스럽게 생겨난다. 이는 불확실함에서 오는 불안의 표현이고, 이 불안을 견디기 어려워 “누가 그랬는지”, 혹은 “어떤 일이 있었던 거지?”를 찾아 세상을 다시 이해 가능한 상태로 만들려 하는 경향이다.

 카롤, 반달모양의 안경 너머로 인상을 찌푸리며, 결정한다. 수프의 미스터리에 대해 조사를 착수, 하기로.  식사자리에서 음식 안에 불청객으로 머리카락 한 올이 둥둥 떠있는 것을 종종 만난다. 일부 사람들은 살짝 드러내고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식사를 이어간다. 또 다른 일부는 집에서건, 레스토랑에서건 꼭 묻고 따진다. 어느 경우가 옳으냐 보다 성향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카롤은 조사를 한다. 누구의 머리카락인지를.

 

어린이의 마음, 어린 시절의 마음

가끔 어린이 그림책을 볼 때 어른 주인공을 만난다. 그림책은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보는 책이라고 하지만, 여전히 어린이를 향해 말을 걸면서 어린이 또는 의인화한 친근한 동물을 불러온다. 등장인물로 말이다. 그러나 그림책 “털”처럼,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인물이 어른일 때, 우리가 간과하면 안 될 게 있다. 카롤이 수프에서 머리카락을 발견했을 때 결정한 행동을 보면 알 수 있다. 세상에 대하 호기심으로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일을 이해하기 위해서 탐구하는 것, 그것이 어린이의 마음이다. 철학자 로제 폴 드루아는 어린이의 마음이 아이에게만 존재하거나 어른이 상실해 버린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내재되어 있는 무구한 본성이다. 우리 깊숙한 곳에 잠든 이 마음을 어떻게 다시 길어 올릴 것인가, 방법의 문제이다. 다름 아닌 모든 것을 새롭게 바라보는 ‘첫 마음’을 회복하는 데 있다.

어린 시절의 마음은 세계와 나 사이의 관계를 새롭게 열어주는 감각적이고 정서적인 능력이다. 그러나 우리는 나이와 습관, 사회가 요구하는 진지함, 맡겨진 역할과 책임, 이미 알고 있다고 믿는 확신, 그리고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는 태도 속에서 이 마음을 점차 마음 저 깊은 곳으로 밀어 넣는다. 그렇게 세계와의 관계는 조금씩 굳어지고, 닫힌 방식으로 고정된다.

드르와가 말하듯, 어린 시절의 마음은 되찾는 것이 아니라, 저 깊은 곳에서 길어올리는 방법을 배우는 일이다. 사물의 색과 냄새, 질감과 소리 같은 작은 감각을 다시 열고, 익숙한 것을 처음처럼 바라보며, 오래된 기억과 설명되지 않는 감정의 미세한 떨림을 놓치지 않는 것. 털 한 올이나 작은 소리 같은 작은 것에 의미를 부여해 내가 세계를 어떻게 경험하고, 그 경험이 나를 어떻게 흔드는지 다시 묻는 일이다.

범인… 누굴까? 

털의 세계…

카롤은 자신의 수프에 빠진 짧고 검은 약간의 웨이브가 있으면서 공격성을 띤 머리카락이 어떤 머리에서 비롯되는지 주변의 머리들을 관찰한다. 먼저 주방으로 향한다. 제일 의심이 간다. 웬걸, 주방의 셰프들에게서는 머리카락 한 올의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 통과. 그다음엔 레스토랑 홀엔 정말 놀랄 정도로 다양한 머리카락이 저마다의 모습을 자랑하고 있다. 흰머리 검은 단발머리부터 그런데, 짧으면서 검고 약간의 웨이브가 있는 공격적인 머리카락을, 머리카락으로 단정할 수 없음을 발견한다. 수염이 있었고, 아… 귀에도 털이 나 있다. 눈썹이 마치 수염처럼 긴 사람도 있고 말이다. 심지어 코털도…

찾기 너무 힘들다. 카롤은 마치 자신이 수프에 빠진 듯한 느낌이다. 자신의 수프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짧고 검은 약간의 웨이브가 있는 공격적인 그 불청객을 머리카락으로 단정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이유를 그림이 말하고 있다. 그림책의 그림은 글과 또 다른 양상으로 우리에게 말을 건다. 음… 카롤이 현장 검증에 따라 의심의 폭을 넓히는 대목에서, 그림은 독자를 한쪽 페이지의 중심에 자리 잡은 커다란 화장실문으로 시선을 집중시킨다. 그렇다면… 그 털이 또 다른 종류일 가능성에 카롤의 스트레스는 극에 달한다.

제일 먼저 찾아간 주방의 셰프들에게서 한 올의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

타인의 시선은 우리를 종종 딜레마로 이끈다.

게다가, 동행한 강아지 장-이브는 수속 털의 미스터리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카롤을 창피해하고, 남편 파타푸프는 자신의 음식, 카르파치오를 차가울 때 먹어야 한다는 핑계로 카롤을 외면한다. 카롤은 딜레마에 빠진다. 어쩌다, 어떤 털이 자신의 수프에 빠졌는지 상황을 알고 싶은 과정에서 사람의 몸에 있는 “털”의 종류가 무척 다양하고 급기야 화장실에서나 확인할 수 있는 그 어떤 털이 자신의 수프 속에 들어갔을 수도 있다는 끔찍한 가능성에 이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변의 시선으로 인해 그 수프를 그냥 먹어야 할지, 아니면 주변의 시선을 뒤로하고 계속 탐색을 이어가야 할지… 선택의 기로에서 카롤은 “외롭고 버려진” 듯한 느낌을 받는다.

 주변 사람들이, 특히 가까운 사람이 이상하게 보거나 방관 혹은 외면할 때, 당사자는 “내가 잘못된 건가?” 하는 강한 의구심을 품게 된다. 자신의 정당한 의심이 “나만의 유난스러운 집착”처럼 느껴지는 심리적 고립에 빠지게 된다. 타인에게 무시당하거나 외면당할 때 느끼는 고통은 실제 신체적인 폭력을 당했을 때와 다르지 않다.

카롤은 급기야 울면서 화장실로 달려간다. 앗 그런데…. 거기, 거울 앞에 선 카롤에게 결국 정체가 모습을 드러낸다. 바로 자신의 턱에 달린 털, 마치 쌍둥이가 짝을 잃은 듯, 짧고 검은 웨이브가 있는 그러나 거만해 보이는 그 털이다. 결국 그 털의 정채를 밝힌 카롤, 조용히 자리에 돌아와 식사를 다시 시작한다. 행복하다. 카롤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시선에 눌려 선택을 한다. 카롤은 그 무거운 압박의 시선을 힘겨워했지만, 자신의 정당한 의심, 알 권리를 포기하지 않는다.

 

식탁에 다시 앉은 카롤, 기쁨이 충만한다

낯선 세상과의 만남, 자기 자신을 구축하는 여정

어린이책은 모든 문학이 그러하듯, 세상의 여러 다양한 삶을 보여준다. 특히 그림책은 글과 그림이라는 서로 다른 언어로 이야기를 펼쳐 독자를 새로운 경험으로 초대한다. 그림책 『털』은, 털이라는 원초적인 자연스러운 생명의 흔적이면서 동시에 우리의 통제를 벗어나는 순간 당혹스러움을 불러일으키는 소재를 다룬다. 이 예민한 소재로 일상에서 자주 맞닥뜨릴 수 있는 상황을 자신을 구축해 나가는 삶의 여정으로 그리고 있다.

일상에서 만나는 당혹스러움은 다른 세계로 들어서는 시발점이 된다. 그 당혹스러움과 어떻게 조율할 것인가에 대해, 호기심으로 탐색의 과정을 거치는 카롤과 탐색의 길에 동행할 수도, 혹은 거리를 둘 수도 있다. 독자의 선택이다. 낯선 세상과 마주하며 그 세계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또 다른 여러 난관을 겪고, 그 모든 경험을 존재의 결을 조금씩 세워가는 성장의 시간으로 이어진다. 다시 식탁에 앉아 라자냐와 티라미수를 앞두었을 때 카롤이 느끼는 설렘과 기쁨은 예전의 일상에서 전혀 느껴보지 못했던 깊은 만족감이다. 난관을 통과하며 카롤과 함께 성장의 여정을 온전히 경험한 독자만이 비로소 함께 느낄 수 있는 감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