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문학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변화하는 사회를 비추며 함께 나아간다. 어린이문학의 주제가 다양해지고 다양한 방법으로 일상의 주제를 다루는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의 면면을 이전과 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 눈을 제시한다. 특히 아이들이 부모 이외에 처음 만나는 세상이 그림책이라 할 수 있는데, 그림책은 글과 그림이라는 각자 서로 다른 방법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통로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일상에서 만나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어떤 시선을 담고 있는지 살펴보는 즐거움은 크다.
프랑스 어린이 그림책에서 집중적으로 다루는 주제는 함께 살기(le vivre ensemble)다. 어린이 문학 전문가 소피 반 데르 린덴(Sophie Van der Linden)은 그의 책, “어린이문학에 대한 모든 것(Tout sur la litterature de jeunesse)”에서, 인류는 농경 사회가 시작되기 훨씬 이전부터 서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조직적인 체계를 갖추고 있었음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고 언급한다. 이는 ‘이야기’가 우리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준다. 더불어 그녀는 아이들이 아주 어린 시절부터 이야기를 통해 성장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야기는 함께 살아가는(le vivre ensemble) 방식은 물론, 우정이나 질투 같은 감정이 대인 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자연스레 일러주기 때문이다.
“함께 살기”는 사실상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 프랑스 어린이책이 함께 사는 것에 방점을 두고 구체화하는 삶의 방법을 다양하게 보여주고자 하는 이유는 프랑스 공화국의 모토 중의 하나인 존중과 연대(la fraternité)를 실현하기 위함임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우리는 사회라는 공동체를 이루며 살고 있다. 그 공동체 안에 모인 사람들은 특이하게도 모두 다르다. 생긴 모습부터, 성격, 생각하고 살아가는 방식… 셀 수 없다. 모든 것이 다르다. 모든 것이 다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면, 바로 “다르다”는 것이다. 다름은 그 사실 자체만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안된다. 그 다름에 해석과 의미를 붙였을 때 차이와 차별이 생겨나고 누군가를 배척하기에 이른다. 다르다는 현상에 존중이 빠졌을 때다. 누구라도 그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따라서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는 가치를 담아 일상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방식을 “함께 살기”의 방법으로 어린이책에서 보여주고 있다.
어떻게 함께 살까?
그렇다면, 그림책, 글 작가 오드리 알베르 ( AUDREY ALWETT), 그림 작가 빅토리아 도르슈(VICTORIA DORCHE)의 “모든 아기씨앗이 다 자라는 건 아니야”(Les graines de bebe ne poussent pas toutes)”는 어떤 결로 더불어 사는 모습을 보여줄까?
모든 아기씨앗아 다 자라는 건 아니야
그림책은 두 아이가 학급에서 나누는 ‘거친’대화로 시작한다. 이야기의 서술자, ‘나’인 한 소년에게 같은 반 친구 마리 팽프를리쉬가 다가와 “너희 엄마가 아이를 죽였대!” 한다. 밑도 끝도 없다. 소년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일축하지만, 마리는 ‘친절하게’ 덧붙인다. “너희 엄마가 뱃속에 있는 아이를 죽였대!” 소년은 믿기도 어려웠지만, 그렇다고 뭐라 더 물을 수도 없다. 집으로 향하는 내내, 마리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기 엄마를 위해 선물하겠다며 길에 흐드러지게 핀 꽃을 ‘한 아름 꺾어’ 부케를 만든다. 소년은 그런 마리를 말없이 바라보며 엄마를 생각했다. 엄마는 꽃다발을 선물로 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 이면에는 식물을 아프게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아기를? 말도 안 돼! 소년은 혼란스러웠다.
2025년 출판사 팡테라(PANTHERA) 에서 발행된 이 그림책은 정보, 지식을 담은 다큐멘터리가 아닌 서사로서 “임신중단의 권리”를 다룬 프랑스에서의 첫 그림책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 오드리 알베르는 이 그림책을 만들게 된 동기로 자신의 5살 된 아이와의 일화를 소개했다. 어느 날 아이가 유치원 하교시간에 정문을 빠져나오며, 대뜸 물었다. “엄마, 어떤 엄마들은 아기를 죽인다는데, 맞아요?”하고 말이다.
엄마가 뱃속에 있는 아기를 죽인다, 는 낙태를 살해로 보는 낙인에 작가는 충격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무엇보다 5살 아이와 이렇게 투쟁적인 이슈를 마주하게 될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기에 무척 당황스럽고 막막했다고 전한다. 그러나 피할 수 없다. 집으로 돌아온 후 다행히 간식으로 준비해 둔 식탁 위의 살구를 보며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고 그 일화를 토대로 프랑스에서 “임신중단의 권리”에 대한 첫 그림책으로서 우리에게 “더불어 살기”위한 구체적인 방법의 하나를 제시한다.
집으로 돌아온 아이는 정원에서 살구 열매를 한 아름 따 바구니에 들고 있는 엄마를 향해 “엄마, 엄마가 정말 아기를 죽였어?” 묻는다.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직접 질문하는 것 밖에. 들고 있던 살구 열매 바구니를 바닥에 떨어트리며 한동안 아이의 눈을 정면으로 바라본 엄마는, 살구 열매에서 배어 나온 오렌지 물이 든 손을 바지에 닦는다. 그리고 천천히 살구를 바구니에 담으며 아이에게 설명하는 것으로 대화를 시작한다.
정원에서 매년 셀 수 없이 수많은 살구열매를 수확하지만 그 많은 살구 씨를 해마다 정원에 다 심을 수는 없다. 그러면 정원은 금방 숲이 되고 매년 숲이 하나씩 생길 수 있다. 그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씨앗을 버린다고 해서 살구나무를 하찮거나 중요하지 않게 여기는 것은 아니라고 말이다.
아이에겐 적확하고 구체적인 언어가 필요하다.
정원의 살구나무를 누구보다도 좋아하는 아이는 일부… 이해하는 듯… 하면 좋겠지만, 곧, “엄마, 난 살구나무가 아니야”라고 반문한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종종 은유를 들어 설명한다. 아이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실상 아이를 오해하는데서 비롯된다. 아이와 이야기할 때, 아이에게 설명할 때 어떤 단어를 선택하는가가 무척 중요하다. ‘엄마가 아이를 죽였어?’라는 위급한 질문에 살구씨 이야기로 대답하는 것은 일단 지구 한 바퀴를 돌고…. 하는 것과 같다. 이해하기 힘들다. 스스로 아름답다고 여긴 이야기에 빠진 엄마를 아이는 가차 없이 불러 세운다. “엄마 뱃속엔 수백 개의 씨앗이 있었던 것은 아니잖아. 단 한 개의 씨앗만 있었잖아. 그런데 왜 그 하나를 간직하지 않았어?”. 아이의 질문은 정확하다. 엄마의 ‘자상한’ 논리의 빈틈을 파고든다.
아이의 이어지는 질문에 이번엔 엄마가 더 간절해진다. “바로 그렇기 때문이야. 아이는 정말 소중해. 사실 이 세상에 아이보다 더 소중한 건 아무것도 없어. 너무나 소중해서, 아이를 돌보는 데는 아주 많은 시간과 용기, 그리고 힘이 필요해”하며 구체적인 자신의 몸인 자궁을 정원에 비유한다. “자신의 배를 정원으로 가꾸고 그 안에 아기 씨앗을 키워내는 건 아주 많은 정성이 들어가는 일이야. 엄마는 더 이상 정원이 되고 싶지 않았어.”그래서 지난해 의사에게 뱃속의 아이씨앗을 없애달라고 부탁했다고 고백하기에 이른다. 아이를 낳는 일을 여성의 역할로 규정하는 사회적인 강제에 맞서 임신과 출산을 강요받지 않을 권리, 선택할 권리로 평등하게 대립시켜 개인의 삶을 설계할 자율성안에 감정을 담아 강조한다.
모든 씨앗은 다 자라지 않는다, 자연의 섭리이다. 자연 역시 그들의 선택과 결정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산한다.
둘의 대화는 어디까지 이어질까. 일상의 대화는 미리 정해진 대본을 서로 외워서 하는 게 아님을 보여준다. 아이를 원치 않는다는 엄마의 고백에 아이는 급격히 불안해진다. “엄마… 엄마 정원에서 내가 자란 것도 후회해?” 아이는 알아야 할 권리가 있다. 자신의 존재의 근원을 말이다. 왜 태어났는지, 자기가 특히 부모에게 원해진 존재였는지 혹은 정당한 존재였는지를 알 권리가 있다. 자신의 삶의 내력을 이해하는 것은 권리이다. 아이에겐 단단하고 안정적인 기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의 삶을 구축하기 위해서 말이다. 친구 마리 팽프를리쉬에게서 처음 “너희 엄마가 아이를 죽였대!”라는 말을 들었을 때, “말도 안 돼!”라고 부인한 이유는 자신의 존재 자체를 흔드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아니야, 결코 그런 일은 없어! 넌 이미 내 삶의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걸, 그리고 난 너 하나로 충분히 만족하거든” 은유가 없다. 구체화된 엄마의 대답에 아이는 그제야 안심한 듯, “네, 한 정원에 나무 한 그루도 괜찮은 거 같아요” 한다. 배속의 아이를 적절한 환경에서 양육할 수 없을 때 이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는 인간의 삶과 직결된 실존적 문제이다. 매년 그들의 정원에는 정성스레 돌 본 한그루의 살구나무가 풍성한 열매를 맺는다. 지속적인 생명력을 아낌없이 보여준다. 그 존재를 귀히 여기는 마음이 이웃과 열매를 나눔으로써 더 두드러진다. 길가에 흐드러지게 피어난 꽃을 “예쁘다”는 이유로 누군가의 한 사람을 “위해서” 아프게 하는 것, 은 개인의 관점, 즉 표현의 자유로 인해 존중받아야 할 다른 누군가가 훼손되고 상처받는 일과 같은 일임을 그림책은 보여주고 있다.
엄마가 아이를 죽였다며 낙태를 살해로 규정하는 한 개인의 편향된 서술방식에 소년은 엄마의 자기 신체에 대한 결정권에서 비롯한 설계하고 가꿔가는 삶 그리고 그런 엄마와의 관계에서 자기 존재에 대한 정당성을 확인한다. 그리고 엄마와의 대화를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배운다.
선택할 권리에는 선택하지 않을 권리도 포함한다.
내 몸의 주인은 나이며 내 몸에서 일어나는 일을 오직 내가 결정할 권리에는 내 삶의 무게를 온전히 짊어지겠다는 책임감을 동반한다. 그렇다면, 아기씨앗에 대한 생명권은 사실상 그 아기집을 가꿔야 할 여성의 삶의 질에 그 무게를 두고 있다. 그것은 태어날 아기의 삶의 질과도 직접 연결이 되기 때문이다. 그 권리가 존중된 이후에 다양한 의견에 대한 표현의 자유에 존중이라는 옷을 덧입힐 수 있다.
우리는 늘 딜레마에 맞닥트린다. 특히 이 그림책에서 중점에 두고 있는 자기 신체에 대한 결정권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말할 때 그러하다. 그림책은 두 권리가 맞닥트리는 딜레마 앞에, 이렇게 점을 찍는다.
살구 열매를 한 아름 수확해 이웃과 함께 쨈을 만들어 나누어 먹는 자리에 마리와 마리 엄마, 역시 함께 한다. 식탁에 둘러앉아 빵에 살구쨈을 발라 먹는데, 마리는 한가득 모아논 살구씨를 가리킨다. “이거 다 버릴 거예요? 그럴 수 없어요. 얘네들은 살구나무 아기씨앗들이란 말이에요!”
소년은 마리에게 마리가 앞서 던진 폭력적인 발언에 대해 자기가 이해한 만큼 설명하지만, 마리가 이해를 했는지는 마리의 몫으로 남겨둔 채, 마리와 마리 엄마가 그들의 정원에 한가득 모아논 살구씨 심는 것을 돕는다. 그것은 각자의 정원은 각자가 가꿔가는 것이기 때문이고, 다른 사람들이 그들의 정원 가꾸는 것에 필요한 도움을 줄 수 있으나 판단하고 낙인 하며 자신의 의견을 강요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자기 신체에 대해 결정할 권리가 존중된 후의 의견에 대한 다름과 차이는 형형색색의 꽃들이 한데 어우러져 있는 것처럼 아름다운 일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살기” 위해서 대화가 중요하다. 대화는 서로가 평등했을 때 가능하다.
그림책의 일러스트레이션은 줄곧 자연의 형형색색의 다양한 결을 보여준다. 자연의 울타리 안에서 다양한 결의 색과 형태를 가진 존재들이 어우러져 살면서 가장 존중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 듯하다. 특히 소년의 “엄마가 아이를 죽였어?”라는 질문에 살구열매 바구니를 떨어뜨린 엄마가 한동안 아이를 응시하고 손을 바지에 닦는 장면 앞에 독자는 숨을 멎게 된다. 천천히 생각하며 신중하게 이야기를 준비하는 모습이다. 아이의 질문에 섣불리, 나중에, 대충… 은 안된다. 이러한 장면은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는 평등한 관계임을 보여준다. 엄마는 아이를 존중한다. 아이의 질문 하나하나에 정성껏 대답한다.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를 꺼내는데 주저할 이유가 없다. 질문한 사람이 이해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살기” 위해서 대화가 중요하다. 대화는 서로가 평등했을 때 가능하다.
대화는 자기 성찰의 한 과정이다 아이의 질문에 대답을 준비하는 것은 자신을 발견하고 구축해 가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어린이문학 전문가 소피 반 데르린덴은 어린이책에서 캐릭터(등장인물)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 그림책의 서술자 ‘나’는 소년이다. ‘임신중단의 권리’는 여성만의 일이 결코 아니다. 자기 신체 결정권에 대한 권리를 신체 특성상 여성에게 직접적으로 해당되는 낙태의 권리를 빌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를 키울 수 없는 조건, 즉 경제적인 어려움, 심리적인 불안, 사회적 지지 부재… 등이 있다면, 아이를 낳지 않을 권리 또한 존중받아야 하며, 이는 태어날 아이의 삶의 질과 부모의 삶 모두를 존중하는 메시지를 화자인 소년을 통해 강조하고 있다. 이 그림책은 지금 우리 사회가 인간의 삶과 생명을 얼마나 책임감 있고 품격 있게 대우하느냐에 대한 질문을 모두에게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