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방문”(LA VISITE)
우리는 ‘온전히 나를 세우기 위해 필요한 혼자만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있을까?
아이들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자라고 성장하지만,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과정에서도 스스로를 구축하며, 단단히 만들어 간다. 누리아 피게라스(Núria Figueras)가 글을 쓰고, 안나 폰트(Anna Font)가 그림을 그린 그림책 『La visite』 (방문)은 2025년 알리스 출판사(Editions ALICE)에서 출간된 그림책으로, 엄마가 잠시 집을 비운 사이 그 시간을 온전히 누리는 작은 여우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특히, 아무에게도 문을 열어주면 안 돼.”
엄마는 집을 나서며 아이에게 말한다. “특히, 아무에게도 문을 열어주면 안 돼.” 이 말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아이의 일상에서 자주 들리는 부모의 당부이기도 하다.
하지만 실제로 아이가 이 말을 온전히 지키는 모습을 본 적은 거의 없다. 왜냐하면 아이에게는 세상을 향해 문을 열게 만드는 특유의 내적 동력, 즉 ‘호기심’이라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누구세요?”
“나야, 침묵(la Silence)”
“가세요!, 엄마가 아무에게도 문 열어주지 말랬어요”
“난 사람이 아닌걸”
엄마 없이 혼자 있는 집에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작은 여우는 문 너머 낯선 존재에게 “엄마가 아무에게도 문 열어주지 말라고 했어요”하고 말하지만, 사실 작은 여우의 마음 문은 이미 열려있다. 문 너머에서 “나는 사람이 아니야”하는 정말 듣고 싶은 목소리를 듣기 때문이다.
엄마의 당부를 지키려는 마음과 본능적으로 꿈틀대는 상상력과 호기심이 어우러져 아이 안에서 새로운 힘이 솟아남을 보여주고 있다.
작은 여우는 어마어마하게 큰 침묵을 마주한다
그리고 마침내 아이는 ‘침묵(La Silence)’의 방문을 받는다. 상상 속에서 침묵은 자신이 혼자 있다는 사실을 존중해주는 존재이다. 침묵은 집 안을 가득 채울 만큼 거대하고 묵직하다. 아이는 그 무게에 눌려 약간의 두려움을 느낀다. 그러나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방법도 안다. 침묵에게 함께 간식을 먹자고 제안한다. 음식을 함께 나누는 것, 그것도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달달한 간식을 함께 먹는 것은 관계의 벽을 허무는 마법과도 같으니까.
작은 여우는 음악 소리보다 더 아름다운 자신의 심장 박동 소리를 들으며, 춤을 춘 뒤, 거대하고 포근한 침묵에 기대 잠이 든다.
작은 여우와 방문자인 침묵은 — 사실은 아이가 초대한 손님이다— 순간을 함께 즐긴다. 함께 간식을 나누어 먹으니 긴장이 풀린다. 두려움은 온데 간데 없다. 작은 여우는 자기는 춤추는 것을 좋아한다며 함께 춤추는 것을 제안한다. 음악을 틀으려 할 때, 침묵은 작은 여우를 말린다. 음악이 흘러나오면 난 가야 해, 라며.
침묵은 작은 여우에게 “네 심장 소리를 들어봐” 한다. 붐 붐, 붐 붐…. 마치 작은 음표들이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듯, 여우는 자신의 심장 박동을 들으며 춤을 추는 데…, 어떤 음악이 그 순간의 심장 박동을 대신할 수 있을까? 아름다운 순간이다. 온 마음을 다해 자신의 심장소리를 들으며 춤을 춘 뒤, 작은 여우는 침묵 곁에서 깊은 잠에 빠져든다.
엄마가 돌아왔을 때, 아이는 엄마에게 새로운 친구를 만났다고 이야기한다.
새로운 친구, 침묵과도 친구가 될 수 있다, 는 것을 아이는 발견한다.
아이에게 혼자 있는 시간은 누군가의 요구나 기대에 반응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이다. 그 시간 속에서 아이는 자신만의 능력을 발견하고, 스스로 선택할 자유를 맛보게 된다.
여우의 집 주변의 숲은 매우 다채로운 색으로 가득해 아이의 풍부한 상상력을 보여주는 반면, 집 안은 색이 거의 없고 단조롭다. 바로 그 고요함 속에서, 혼자만의 시간 속에서 아이는 상상력을 마음껏 펼치고다시 숨을 고르게 된다.
침묵을 하나의 신비로운 인물로 형상화해 작은 여우의 집을 가득 채우는 모습, 그리고 그 존재를 클로즈업한 그림은 독자 역시 자연스럽게 자기 안으로 잠시 들어가는 경험을 하게 한다.
눈을 뜨면 상상을 초월한 접속의 연결망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이다. 잠시 고요속에서 나 자신과 접속하는 시간은 내 자신의 음성을 듣고 나 자신을 발견하는 시간임을 그림책은 아이들에게 말하고 있다.
“네 심장 소리를 들어봐, 네 심장 박동 소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들어봐”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