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 일주일 치 장을 보러 장터에 간다. 장터는 동네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우리 동네에서는 화요일·금요일·일요일, 일주일에 세 번 아침마다 열린다. 전날 저녁이면 구청 직원들이 임시 텐트를 설치한다. 수확물을 실은 지방의 생산자들, 미리 조리한 음식물을 실은 판매자들은 새벽 어둠을 가르며 달려오고, 소매상인들 역시 도매상에서 물건을 받아 오는데 9시 무렵이면 각자의 임시 텐트에 상품들을 예쁘고 먹음직스럽게 펼쳐놓는다. 북적이던 장터는 오후 1시쯤이 조용히 문을 닫는다.

장터의 가장 큰 매력은 파리 근교에서 길러진 신선한 식재료와 제철의 숨결을 그대로 만날 수 있다는 데 있다. 파리는 북쪽 바다와도 가까워 싱싱한 해산물과 생선을 맛볼 수 있는 행운을 누린다. 대형 슈퍼마켓에 익숙했던 난 장터를 알고부터는 장터 단골이다. 농장에서 막 달려온 고기와 소시지, 전날 바다에서 건져 올린 생선과 해산물, 새벽에 갓 구운 빵, 흙과 간혹 애벌레까지 제 집인 듯 붙어 있는 채소들, 과일, 와인, 꽃… 없는 것이 없다. 특히 토마토와 사과는 그 종류를 셀 수 없다. 그 하나 하나를 원하는 만큼 직접 종이 봉지에 담아준다. 내 돈 주고 물건을 산다고 내가 물건을 담지 않는다.

없는 게 없는 이 장터에 그래서인지 모든 세대가 모인다.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들의 피곤함을 덜어주는 유모차를 동반한 젊은 세대, 부모에게서 잠시 시간을 내준 듯한 그러나 그조차 즐기는 청소년들, 그리고 천천히 장바구니를 끄는 할머니·할아버지까지. 사람들은 서로의 안부를 묻고, 판매자들과도 일주일 동안의 안부를 전하며 소소한 일상을 나누면서 정성이 고스란히 담긴 수확물로 장바구니를 채운다. 서로가 나누는 대화를 옆에서 듣다보면 프랑스어를 배울 때 책에서 배우지 않은 이들만의 일상어를 들을 수 있다. 간혹 진한 농담, 서로가 서로를 부르는 친근한 용어에서 언어가 가진 문화를 체감한다. 각 상점의 ‘전문가’들이 치즈 한 조각, 갓 구운 빵 한 조각, 잘 익은 과일 한 조각을 맛보라고 건네면 아이들은 장터에 온 목적을 찾은 듯 얼른 받아 입에 넣는다. 계절마다 절기마다 맛보기도 다르다. 지난 1월, 프랑스는 “갈레트 데 루아” (galette des rois) 기간이었다. 가정에서는 브리오슈 형태의 둥근 빵을 사서 간단한 게임과 함께 나눠 먹는 풍습이 있는데, 장터 빵집에서는 맛보기 용으로 사람들에게 권한다. 그때 아이들은 놓치지 않고 미리 알고 나왔다는 듯 기다렸다가 맛본다. 말린 자두를 가지고 나온 생산자는 “인생은 아름다워”하고 웃음을 잃지 않으며, 이제 막 걸음마를 하는 아이의 삶의 한 부분을 채우듯, 말린 자두 하나, 또 하나 건넨다. 아이는 이 세상에 와서 장터에 발을 디디며 인생의 맛을 알아가는 듯하다.

어렸을 적, 난 엄마랑 재래시장에 자주 갔다. 엄마는 아버지가 운영하시던 공장 식구들을 포함해 대가족의 끼니를 손수 지었다. 끼니마다 따뜻한 밥과 국을 지었다. 점심과 저녁 식단이 다르고, 평일과 주말 식단이 달랐을 뿐 아니라, 계절마다 식재료에 따라 다른 반찬을 만들어내느라 신발이 닳도록 시장에 오고 가셨다. 하루에 두 번 점심을 위해 또 저녁 식단을 위해서 말이다.

엄마는 시장에 갈 때마다 한 손에는 장바구니를 다른 한 손엔 내 손을 잡았다. 엄마 손을 그렇게 오래, 꼭 잡아 본 기억은 그 시절 그게 전부였다. 늘 마당 한쪽 구석에서 놀고 있던 나를 집을 나설 때마다 장바구니를 챙기듯이 찾으셨다. 어린 내가 시장바구니를 드는 데에 힘을 보탤 리 없었다. 게다가 후한 인심의 상인들이 건네는 한 입 거리의 맛보기도 제대로 받아먹지 못할 정도로 수줍음을 많이 탔던 난 엄마 치맛자락 뒤로 숨기에 바빠서 프랑스 아이들처럼 인생의 맛을 골고루 맛보지도 못했는데도 말이다. 그래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엄마는 내게 늘 그러했듯…. 기다렸다. 수줍음 많던 나도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을, 표현을 할 수 있을 때까지 함께 시장을 다니며 기다렸다. 그랬다! 딱 하나, 생굴이 놓인 매대를 앞두고는 어디서 용기가 났는지 엄마! 하고 불렀다. 나도 내가 원하는 것을 표현할 줄 알게 되었다. 엄마는 기다렸다는 듯 굴이 싱싱하다며, 미리 껍질을 까놓은 굴 한 봉지를 서슴없이 주문해 장바구니 한켠을 채웠다.

당연한 것으로 알고 찍어 먹던 초고추장은 매운맛보다는 달고 신 맛에 끌렸다. 초고추장은 굴의 비릿한 맛을 감추는 데 충분했다. 굴은 입안에서 미끈하게 춤을 추면서 많이 씹지 않아도 부드럽게 목으로 넘어간다. 해조류를 품은 바다 향기를 남긴 채…. 김장할 때 생굴을 넣어서 생굴 김치만으로도 먹는 걸 좋아했고, 삼겹살을 통으로 삶아서 뜨거울 때 굴김치를 얹어서 먹는 걸 좋아했다. 굴은 내가 좋아하는 하나의 취향으로 여기면서 말이다. 물론 난 사람들이 먹을 수 있는 것은 안 가리고 다 먹는다.

맛의 취향으로서가 아닌, 입안의 바다 향기가 내 삶의 오랜 여정을 거슬러 엄마와 함께 되살아난 것은 파리 장터에서다. 동네 장터에서는 여름 휴가인 7월 8월을 제외하곤 석화, 생굴을 판다. 다진 양파와 식초를 곁들인 붉은 와인 소스를 얹어 먹는다. 프랑스 굴은 어떤 맛이지? 라는 호기심으로 굴을 주문했다. 주문한 개수만큼 즉석에서 손질해 주는 석화는 스티로폼으로 만든 일회용 접시 위에 한자리씩 차지하고 있었다. 한쪽 껍질을 열고 하얀 속살을 드러낸 굴에 약간의 양파 와인 소스를 곁들여, 아래 껍질을 잡고 그대로 입안으로 흡입했다. 아삭하면서 살짝 남아있는 양파 특유의 톡 쏘는 맛과 포도와 알코올 향을 머금은 와인에 새큼한 식초맛과 어울린 생굴을 한 입 깨무니 그 차가움이 입안에 퍼져 따뜻한 혀를 적시는 순간이었다. 오래도록 잊고 있었던 어린 시절의 바다 향기가 입안에서 깨어나 온 몸으로 번졌다. 마침, 일요일 미사를 알리는 동네 교회 종소리가 내 영혼을 휘감았다. 아… 난 누구이고, 여긴 어디지…? 아득해지면서 생굴의 향긋함과 엄마의 미소가 퍼졌다.

엄마에게 시장은 반찬거리를 사기 위한 곳만은 아니었다. 사람들을 만나 안부를 묻고, 이야기꽃을 피우며 삶을 나누는 곳이기도 했다. 몇 발자국을 떼면 어디선가 다가온 동네 아주머니, 자가 상점의 상인들 혹은 손수 골짜기나 들판에서 뜯은 나물에 생계를 의지한 노인들 모두들 엄마와 삶을 나누는 이웃이었다. 늘 밥을 짓고 반찬을 만들고 집안일에 엉덩이 붙일 시간 없었던 엄마는 유독 시장 한 복판에서는 여유 있어 보였다. 엄마가 그렇게 사람을 좋아하고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는 것을 좋아하는 줄 함께 살 땐 깨닫지 못했다. 집에서는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정해져 있었다. 말하는 사람은 늘 아버지였고, “우리”는 들어야하는 사람으로 살았다. 부모이지만 아버지와 분리되 “우리”에 속해 당신 자식들처럼 가장의 말을 들어야하는 사람으로 살아야 했던 엄마는 당신의 열정을, 특히 집에서는 말하는 것보다 창조하는 일에 쏟았던 것이다.

싱싱하고 신선한 식재료와 마주친 사람들의 미소를 가득 담아 장에서 돌아오는 길, 장터에서 그토록 여유 있었던 엄마의 발걸음은 어느새 장바구니의 무게에 반비례해 더 빨라졌다. 엄마의 한 손은, 엄마의 걸음걸이마저 휘청거리게 할 정도로 잔뜩 풍성해진 시장바구니에 이미 붙들려 있었고, 내 차지였던 또 다른 한 손은 다른 반찬을 기다리는 재료들이 차지했다. 난 엄마 손을 양보해야 했다. 엄마를 행여 놓칠까 봐 겨우 엄마의 치맛자락을 붙잡고 엄마 발걸음에 맞춰 종종걸음 해야 했다. 시장에서의 여유로움과 풍요로움 때문이었을까? 엄마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마술하듯 요리했다. 갖가지 재료들을 다듬어 때론 삶고, 볶고, 찌는 방법으로 익혀서, 때론 자연의 향기를 보존한 날 것으로 색다른 맛과 향을 얹어 우리들의 허기와 삶을 채웠다.

엄마가 만든 음식 맛은 살면서 익숙해져서이기도 했지만, 파리에서 살면서 제일 견디기 어려운 그리움이었다.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음식 맛에서부터 시작되다니…할 수도 있지만, 엄마의 손맛은 엄마가 구축해 낸 당신 삶의 전부였다는 것을 맛에 대한 그리움으로 깨달았다. 엄마는 어렸을 땐 아버지가, 결혼해서는 남편으로 인해 외출조차 마음대로 못했다. 한 사람으로서 꽃을 피우는데 열정을 갖고 할 수 있는 일이 집안일이고 특히 요리였고, 바느질이었다. 억압된 가부장제 사회에서 엄마가 유일하게 탈출해 자유로울 수 있는 곳이 바로 장터에서였고 당신의 삶을 꽃피울 수 있는 곳이 주방에서였다. 한 땀 한땀 삶을 짓 듯이 한 올 한 올 바늘을 천자락에 들고 날 때면 닳아빠진 헌 옷도 입을 만 했고, 어디에서도 돈 들여 배운 적 없는 자수는 엄마의 고운 마음을 그대로 드러냈다. 우리 엄마는 요리를 참 잘해, 엄마가 하는 음식은 정말 맛있어, 엄마는 바느질을 참 잘 해, 라고 단순하게 말할 때, 그 단순한 표현이 한 여자가 한 사람으로서 사방이 꽉 막힌 제도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당신의 삶을 스스로 꽃피우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를, 한 접시의 반찬이 어떤 세상을 품고 있는지를, 난… 파리의 동네 장터에서 뒤늦게 깨달았다.

식사 준비할 때 난감했고, 뭘 먹어도 허전했다. 당연히 엄마가 해주고 함께 먹었던 요리들을 흉내 내보려고 애썼다. 비슷한 재료들을 사서 만들어 봤지만 “비슷한” 맛과 “같은” 맛의 차이는 컸다. 엄마의 삶을 흉내 낼 수도 같아질 수도 없는 이유와 같았다. 직접 키우고 재배해 새벽부터 달려온 농부들, 전통 레시피로 미리 준비해 온 상인들과 먹거리를 사이에 놓고 얼굴을 마주보고 인사를 나누니 사람들이 보이고 엄마가 살았고, 또 살고 싶었던 세상이 보였다. 먹거리들을 계기로 모인 사람들에게서 서로의 고단한 하루를 위로하고 관계를 돈독하기 위한 소소한 움직임들 말이다. 매대위에 놓인 수확물에 담긴 생산자들의 진심을 읽어내고, 기쁘고 고맙게 응답하며 생산물을 건네는 손길에서 삶의 즐거움을 함께 나누고 싶은 우리 엄마의 마음이 보였다.

겨울이면 양배추절임을 판다. 소시지, 삶은 돼지고기와 같이 먹으면 우리나라 김치에 버금간다. 장터 입구에서부터 배추가 익어가는 향기는 식욕을 당기고 엄마에 대한 그리움으로 인한 쓸쓸함을 반가움으로 바꿔놓는다. 겨울에만 맛볼 수 있지만, 춥고 뼈가 시린 겨울에 따뜻하고 정겨운 동반자가 아닐 수 없다. 소시지를 곁들여 슈크르트를 한 통 넉넉히 사고 정육점을 기웃거리는데, 정육점 아저씨가 삼겹살을 권한다. 아주 신선하다고 말이다. 처음 장터에 와서 삼겹살을 일부러 찾아 샀더니 그 이후 삼겹살을 손질해 준비해 온 날이면 어김없이 삼겹살을 권한다. 프랑스 사람들은 삼겹살 구이를 잘 먹지 않아서인지 훈제 삼결살에 비해 생 삼겹살을 파는 정육점이 흔하지 않다. 더구나 난, 구워 먹기 좋게 얇게 썰어달라고 했으니… 아저씨한테 좀 특이했을 수도 있어서 기억하는 것 같았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기억하는 아저씨를 만나는 즐거움을 장보기에서 빼놓을 수 없었다. 그런데 지난 크리스마스 휴가 이후 아저씨를 볼 수 없다. 은퇴했다. 누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먼저 알고 일부러 준비해와 권했던, 아저씨를 만날 수 없어서, 음…. 예전 같지는 않지만, 또 하나의 따뜻한 추억을 가진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파리 동네 장터에서 이미 먼 길 떠나신 엄마가 살았던 그리고 살고 싶었던 세상을 만난 건 아이러니다. 잃어버린 줄 알았던, 잊고 있었던 세상을 다시 만났다. 엄마가 내게 그림 그리듯이 삶으로 보여주셨던 세상 말이다. 과거는 지나가버리는 것이 아니었다.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리움의 대상만은 더더욱 아니었다. 엄마는 당신과 함께 한 시간을 깊은 기억의 그림으로 내게 남겨줬다. 그 소중한 기억으로 다시 살 수 있게 말이다.

장터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사는 모습을 보면서 난 엄마를 만난다. 엄마는 원치 않았던 이사를 했다. 나고 자란 고향에서보다 더 오래 머물렀던 동네를 떠나야했다. 이후 늘 살던 집과 동네 장터를 그리워하셨다. “집에 가고 싶다”고 말이다. 엄마가 그리워한 삶, 엄마가 살았고, 살고 싶었던 세상은 바로 나의 현재이고 미래다. 내게 남긴 엄마의 선물이다. 상인들의 풍성한 수확물과 즐겁게 맞이하는 그들의 넉넉하고 풍요로운 얼굴에, 그들과 이야기꽃을 피우는 주민들이 만나는 장터 한 가운데 엄마가 있기에 난 일주일에 한 번 장터를 거르지 않는다.

프랑스를 방문해 프랑스를 알고 싶고, 이해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추천하고 싶은 삶의 모습이다.